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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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벽에 비가 내리퍼붓는다.
유년시절 기억이 많지는 않은데, 그중 천둥번개에 관한 에피소드 하나가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네살 쯤 됐을 땐가, 오늘처럼 세찬 빗줄기에 더해 천둥이 온 하늘을 울리던 날
거실의 통유리 바깥 너머로 수없이 번쩍거리던 낙뢰를 보았다. 높은 층에 살아서 하늘이 더 가까웠던 것 같다.
귀가 아플 만큼 커다랗던 천둥소리는 무시무시한 공포감으로 다가왔기에 급기야 나는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때 아빠가 내 몸을 오른팔로 높이 끌어안고 어깨에 기대어 다독여주셨는데, 그게 아마 내 머리가 기억하는 처음이자 마지막의 부정이라고 생각된다.
이후로 십수 년 간 그때의 달콤함이나 편안함, 따뜻함 따위를 바라는 의지가 상당히 어색해졌다.
스물의 나는 당시의 그 감정이 아직까지도 샘이 나고 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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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때 작성한 생물노트를 보다가 뒷표지 안쪽의 작은 메모에 시선이 갔는데 무언가 울컥함이 있었다. 적을 당시의 심정은 몇 년이 흘렀음에도 내 안에 아주 선명히 남아 있었다. 1
중2 겨울에 학교 상담실에서 이뤄진 네댓 번의 상담은 그 어떤 도움도 되어주지 못했다. 기대치를 높인 채 첫 발을 디딘 나 자신이 후회스러울 만큼.
성과 없는 행위는 공허감만 증폭시킬 뿐이었다.
옛일을 더듬는 일이 정말이지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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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대비를 위해 과학도서를 빌리다가 문득 억울함이 치솟(?)았다. 나는 네 가지 과목 중 생명과학을 택할 텐데, 따지고 보면 물리는 해당과목만 열심히 파도 지식이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다. 화학도 마찬가지. 그런데 생명과학을 공부하다보면 유기화학이 너무 많이 나와서... 화학지식을 먼저 익힌 다음 들여다봐야만이 면접 심화질문에 당황하지 않고 잘 답변해내리라 생각했다. 원체 조금이라도 의문점이 발생할 시 가지를 끝까지 뻗는 성향이긴 하나, 일반화학을 웬만큼 알지 않는 이상은 학문 자체가 물음표 투성이로 전락해버리는 사태가 벌어질 듯함. 사실 과학이란 학문 체계를 겹치지 않게끔 분류한다는 게 불가능하긴 하지만.. 그래도 차라리 지학은 그정도의 막대한 유기화학 상식을 요구하지 않잖아. 정말 에러같다...
쨌든 책을 빌렸으니 열심히 읽어야지. 과학 정복!! 그리고 이번 거사를 위해 중딩때 한창 사들인 KBO대비 문제집도 심도있게 풀어내자.
- 내가 전화번호를 모두 없앤 이유. 한 명도 날 알아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서. 날 알아줬으면 하는 이에겐 차마 말을 건네지 못할 것 같아서. 내 주위에 행복한 사람들이 있는 게 싫어서. 보고 있으면 그냥 화가 나서. 관심 없는 타인이란 아무런 존재성을 띠지 못 하니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