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다섯째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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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빠 생신이자, 내 생일 이브다.- 우리집은 음력으로 따진다- 덕분에 난 항상 묻어간다.. 두 배로 즐겁기도 하지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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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스케줄을 비워놓으란 엄마 말씀에 오전 알바 후 3시쯤 집엘 도착했다. 동생은 영화를 보러 단장하는 중이었고, 난 그러는 동생과 시시껄껄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완전한 여유를 누렸다.
거실의 창을 바라보았는데 오후 네시의 볕이 참 따뜻하더라.
늦겨울인지 초봄인지 분간이 어려운 2월의 마지막주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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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나가고 하나 남은 긴장이 툭 풀렸다. 아. 하루 중 이시간에 혼자 거실 쇼파에 기대어본 적이 마지막으로 언제였지? 막연히 아주 어렸을 때란 상념이 그려졌다. 평화로웠다. 매일 보는 집이 이렇게 낯설 때도 있다는 사실에 새삼 기이했다.
익숙한 공간과 낯선 시간의 조합이란 이런 거군.. 금단의 짓을 범하는 어린아이라도 된 마냥 키득키득 웃음이 흘렀다.
학교에서 조퇴하고 모두가 수업중일 시간에 일찍 귀가한 느낌과 다를바 없었다. 교복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쇼파에 누워 괜히 텔레비전 만화영화에 채널을 맞춰놓고 실실 웃었는데.. 만화에 집중했다기보단 나를 감싸는 모든 조건들이 참 포근했다.
노을이 가기 전의 따스한 햇살
그 햇살이 들어오는 한적한 오후의 거실
약간 피로한 몸, 무거운 눈꺼풀
교복을 입고 누워도 안 들리는 잔소리
내 마음대로 누를 수 있는 리모컨
엄마아빠 퇴근까지의 여유
이런 것들.
집에서의 특수한 적막감은 변함없이 같은 안정을 부여해주나보다.
옛생각이 나면서 채널을 계속 돌렸다. 평소에는 거의 접할 수 없는 프로들이 방영되는 게 신기한 내 처지는 생경하기 이를데 없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조선곡 호랑이 1부를 좀 보다가 심부름을 위해 티비를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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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당분간 또다시 경험할 수 없을 거다. 그래서 기록해둔다.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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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버텼다.. 불금 저녁에 일마치고 와서 라면 한 개도 다 못먹고 웹디자인 작업에 여념인 내게 동정이 들긴 하지만..
부모님은 필드 경기 후 저녁먹고 귀가중이시다.
아 혼자가 편한데.. 더구나 내일 아침부터 또 학원출근이다....(Aㅏ..orz) 내 재량껏 다음주 토요일로 미룰 수 있는 상황임에도, 몸이 아파서 100시간을 날렸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바짝 들었다. 끈은 풀릴 수 있는 데까지 느슨해졌다. 더이상 없는 끈을 갖다붙일 순 없는 법이다.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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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력 생일 저녁에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1월 초를 끝으로 그 누구와도 사적인 식사약속을 나누지 못했던 차다. 그만큼 건조하게 지냈단 방증이겠지. 휴 어색하다. 별로 하는 것도 없는데 나의 하루는 어째서 촘촘한 걸까... 아무 압박감 없이 방 침대에 누워서 헤드폰 끼고 흐르는 피아노음악에 명상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